한국어 읽기판
Chapter 16
젊은이들이 이모와 한 약속에는 아무도 반대하지 않았다. 콜린스 씨는 방문 중 단 하루 저녁이라도 베넷 씨 부부만 남겨 두고 나가는 일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모두가 한결같이 만류했다. 알맞은 시간이 되자 마차는 그와 다섯 사촌 아가씨를 태우고 메리턴으로 향했다. 아가씨들은 응접실에 들어서자마자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위컴 씨가 외삼촌의 초대를 받아 지금 이 집에 와 있다는 것이었다.
그 소식을 듣고 모두 자리를 잡자, 콜린스 씨도 주위를 둘러보며 감탄할 틈이 생겼다. 그는 방의 크기와 가구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로징스에 딸린 작은 여름 아침 식사용 응접실에 와 있다고 해도 믿었을 것이라고 그는 선언했다. 처음에는 그 비교가 그리 기쁘게 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필립스 부인이 로징스가 어떤 곳인지, 주인이 누구인지 듣고 나서는 달랐다. 레이디 캐서린의 응접실 가운데 고작 하나를 설명했을 뿐인데도, 벽난로 장식 하나에 팔백 파운드가 들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제야 그 칭찬이 얼마나 대단한지 온전히 느꼈다. 이제는 가정부 방에 견주었다 해도 거의 기분 나빠하지 않았을 것이다.
콜린스 씨는 레이디 캐서린과 그 저택의 온갖 장관을 이야기했다. 그러다가 가끔 자기의 누추한 집과 그곳에서 하고 있는 개량을 칭찬하는 말로 빠지기도 했다. 신사들이 합류할 때까지 그는 그렇게 즐겁게 시간을 보냈다. 필립스 부인은 아주 주의 깊게 들어 주었다. 들으면 들을수록 콜린스 씨가 대단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커졌다. 기회만 나면 이 모든 이야기를 이웃들에게 고스란히 옮기리라 마음먹었다. 사촌의 말을 도저히 들어 줄 수 없었던 아가씨들에게는 기다리는 시간이 몹시 길었다. 악기라도 하나 있기를 바라거나, 벽난로 선반 위의 도자기를 서투르게 옮겨 그린 자기들 그림을 살펴보는 것 말고는 할 일이 없었다. 그래도 마침내 기다림은 끝났다. 신사들이 정말로 다가왔다. 위컴 씨가 방에 들어섰을 때, 엘리자베스는 전날 그를 바라보면서도 그 뒤로 그를 생각하면서도, 분별을 잃을 만큼 감탄한 적은 없다고 느꼈다. 민병대의 장교들은 대체로 훌륭하고 신사다운 사람들이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괜찮은 이들이 오늘 모임에 와 있었다. 하지만 위컴 씨의 용모와 얼굴, 모습과 걸음걸이는 그들 모두를 훨씬 뛰어넘었다. 마치 그 장교들이 뒤따라 방으로 들어온, 포도주 냄새를 풍기는 넓적한 얼굴의 답답한 필립스 이모부보다 훨씬 나은 것과 같았다.
거의 모든 여성의 시선은 위컴 씨에게 쏠렸다. 그리고 그가 마침내 곁에 앉아 준 행운의 여자는 엘리자베스였다. 그는 비 오는 밤 날씨와 장마가 이어질지 모른다는 이야기부터 꺼냈다. 그저 그런 화제였지만, 곧 기분 좋게 대화를 이끌었다. 그의 유쾌한 말솜씨를 듣자 엘리자베스는 아무리 흔하고 따분한 화제라도 말하는 이의 솜씨에 따라 흥미로워질 수 있다고 느꼈다.
위컴 씨와 장교들이 숙녀들의 관심을 놓고 경쟁하게 되자, 콜린스 씨의 존재는 보잘것없이 가라앉는 듯했다. 적어도 젊은 아가씨들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되었다. 그래도 가끔은 필립스 부인이라는 친절한 청자가 남아 있었다. 그녀가 꼼꼼히 살펴 준 덕분에 커피와 머핀도 더없이 넉넉히 받았다.
카드 탁자가 마련되자, 그는 휘스트 놀이에 앉아 보답으로 그녀에게 호의를 베풀 기회를 얻었다.
“지금은 이 놀이를 아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만, 기꺼이 실력을 키우겠습니다. 제 지위에 있는 사람은….” 필립스 부인은 응해 준 데 무척 고마워했다. 하지만 그 이유까지 기다릴 수는 없었다.
위컴 씨는 휘스트를 하지 않았다. 그래서 다른 탁자에서 엘리자베스와 리디아 사이에 자리를 얻었을 때, 모두가 선뜻 기뻐하며 맞았다. 처음에는 리디아가 그를 완전히 독차지할 위험이 있어 보였다. 리디아는 결코 남에게 말할 틈을 주지 않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로터리 티켓 카드 놀이도 몹시 좋아했다. 이내 놀이에 너무 몰두했다. 내기에 열을 올리고 상을 딸 때마다 소리를 지르느라 어느 한 사람에게 특별히 관심을 쏟을 수 없었다. 그러니 놀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끊기는 때만 빼면, 위컴 씨는 엘리자베스와 이야기할 여유가 있었다. 엘리자베스도 그의 말을 몹시 듣고 싶었다. 그러나 그녀가 가장 듣고 싶은 이야기, 곧 그가 다아시 씨와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리라고는 바랄 수 없었다. 그 신사를 입에 올릴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녀의 궁금증은 곧 풀렸다. 위컴 씨가 먼저 그 화제를 꺼냈다. 그는 네더필드가 메리턴에서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물었다. 답을 들은 뒤에는 망설이는 듯, 다아시 씨가 그곳에 머문 지 얼마나 되었느냐고 물었다.
“한 달쯤 되었어요.” 엘리자베스가 말했다. 화제가 끊기게 두고 싶지 않아 덧붙였다. “더비셔에 굉장히 큰 재산을 가진 분이라고 들었어요.”
“그렇습니다.” 위컴이 대답했다. “그곳에 훌륭한 영지가 있지요. 연 수입이 확실히 만 파운드입니다. 그 문제에 관해 저보다 더 확실한 말씀을 드릴 수 있는 분을 만나기는 어려우실 겁니다. 저는 아주 어릴 때부터 그분 집안과 특별한 인연을 맺었으니까요.”
엘리자베스는 놀란 기색을 감출 수 없었다.
“아마 어제 우리가 그토록 냉랭하게 만나는 모습을 보셨을 테니, 그런 말을 듣고 놀라실 만합니다, 베넷 양. 다아시 씨와 많이 아십니까?”
“제가 바라는 만큼은 잘 알아요.” 엘리자베스가 열띠게 외쳤다. “나흘 동안 같은 집에 머물렀는데, 아주 비호감인 분이라고 생각해요.”
“그분이 호감 가는 사람인지 아닌지에 관해 제 의견을 말씀드릴 권리는 없습니다.” 위컴이 말했다. “제가 판단할 자격이 없으니까요. 너무 오래, 너무 잘 알아서 공정하게 판단할 수가 없습니다. 저는 공정할 수가 없지요. 하지만 그분을 그렇게 평가하면 대체로 사람들은 놀랄 겁니다. 아마 다른 곳에서는 그렇게 강한 말로 하지 않으실 테고요. 여기는 가족이 함께 있는 자리이니까요.”
“정말이지, 네더필드만 아니라면 이 근방 어느 집에서도 여기서보다 말을 아끼지는 않을 거예요. 하트퍼드셔에서는 그분을 전혀 좋아하지 않아요. 모두 그분의 오만함에 진저리를 내지요. 누구에게 물어도 더 좋게 말하는 사람은 없을 거예요.”
“그분이든 누구든 마땅히 받아야 할 평가보다 더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다고 해서.” 위컴은 잠깐 침묵한 뒤 말했다. “제가 안타까운 척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분에게는 그런 일이 좀처럼 없는 것 같아요. 사람들은 그의 재산과 지위에 눈이 멀거나, 위압적이고 도도한 태도에 겁을 먹습니다. 그래서 그가 보여 주기로 한 모습만 보지요.”
“고작 몇 번 만나 본 저도 성질이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위컴은 그저 고개를 저었다.
다시 말할 기회가 오자 그가 말했다. “그분이 이 지방에 오래 머물 생각인지 궁금하군요.”
“전혀 모르겠어요. 하지만 제가 네더필드에 있을 때 떠난다는 말은 듣지 못했어요. 그분이 근처에 있다고 해서 민병대에 들어오려는 계획에 지장이 생기지는 않기를 바라요.”
“아, 아닙니다. 다아시 씨 때문에 제가 쫓겨날 수는 없지요. 저를 마주치고 싶지 않다면 그분이 떠나야 합니다. 우리는 좋은 사이가 아니고, 그를 마주치는 일은 언제나 고통스럽습니다. 하지만 제가 그를 피해야 할 이유는 온 세상 앞에서 떳떳이 밝힐 수 있습니다. 너무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는 마음과, 그가 지금 같은 사람이 되었다는 사실이 몹시 쓰라울 뿐이지요. 베넷 양, 그분의 아버지인 돌아가신 다아시 씨는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분이자 제게 가장 진실한 친구였습니다. 지금의 다아시 씨와 함께 있으면 수많은 다정한 추억이 떠올라 마음 깊이 슬퍼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가 제게 한 일은 수치스럽습니다. 하지만 아버지의 기대를 저버리고 그분의 기억을 욕되게 한 일만 아니라면, 그가 한 일은 무엇이든 전부 용서할 수 있으리라고 진심으로 믿습니다.”
엘리자베스는 이 이야기에 갈수록 더 마음이 끌렸다. 온 정신을 다해 들었다. 하지만 민감한 문제라 더 물을 수는 없었다.
위컴 씨는 메리턴과 인근 지역, 그곳 사람들처럼 일반적인 화제로 이야기를 돌렸다. 지금까지 본 모든 것이 무척 마음에 든 듯했다. 특히 사람들에 관해서는 부드러우면서도 뜻이 아주 분명한 칭찬을 했다.
“계속 사람들과, 그것도 좋은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다는 기대가.” 그가 덧붙였다. “제가 민병대에 들어온 가장 큰 이유였습니다. 아주 훌륭하고 유쾌한 연대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요. 친구 데니가 지금 주둔한 이곳 사정과, 메리턴에서 장교들이 받은 극진한 환대와 맺게 된 좋은 교분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마음이 더욱 끌렸지요. 솔직히 저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일이 꼭 필요합니다. 저는 기대를 저버림당한 사람이라 혼자 있어서는 마음을 견딜 수가 없습니다. 반드시 할 일과 교제가 있어야 합니다. 군인의 삶은 원래 제가 가려던 길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상 알맞은 선택이 되었습니다. 성직이 제 직업이 되었어야 합니다. 성직자가 되도록 교육받았거든요. 우리가 방금 이야기한 신사만 허락했더라면, 지금쯤 아주 값진 성직록을 차지하고 있었을 겁니다.”
“정말인가요?”
“그렇습니다. 돌아가신 다아시 씨는 자신에게 임명권이 있는 가장 좋은 성직록이 다음에 비면 저를 임명하라고 유언하셨습니다. 그분은 제 대부였고 저를 대단히 아껴 주셨지요. 그분이 얼마나 친절했는지는 아무리 말해도 다 표현할 수 없습니다. 저를 넉넉히 보살피려 하셨고, 그렇게 했다고 생각하셨습니다. 하지만 그 성직록이 비자 다른 사람에게 주어졌습니다.”
“세상에!” 엘리자베스가 외쳤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죠? 어떻게 유언을 무시할 수 있었나요? 왜 법으로 도움을 받으려 하지 않았어요?”
“유증 문구에 하필 형식상의 흠이 있어서 법에 기대를 걸 수 없었습니다. 명예로운 사람이라면 그 뜻을 의심하지 않았을 테지만, 다아시 씨는 의심하기로 했지요. 아니면 그저 조건이 붙은 권고일 뿐이라고 여기고는, 제가 낭비나 경솔함 때문에, 다시 말해 무언가를 했든 아무것도 하지 않았든, 그 권리를 전부 잃었다고 주장했습니다. 분명한 것은 제가 그 직을 맡을 나이가 되었을 때, 정확히 이 년 전에 성직록이 비었고 다른 사람에게 주어졌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잃어 마땅한 짓을 정말로 했다고는 제 자신을 책망할 수 없다는 것 역시 분명합니다. 저는 성정이 뜨겁고 거리낌 없는 편입니다. 때로는 그에 관한 의견을, 심지어 그에게 직접, 지나치게 솔직히 말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보다 더 나쁜 일은 기억나지 않습니다. 사실 우리는 아주 다른 부류의 사람이고, 그는 저를 미워합니다.”
“정말 끔찍하군요! 사람들 앞에서 수치를 당해 마땅해요.”
“언젠가는 그렇게 될 겁니다. 하지만 제가 그렇게 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의 아버지를 잊지 못하는 한, 그에게 맞서거나 그의 일을 폭로할 수는 없습니다.”
엘리자베스는 그런 마음을 지닌 그를 존경했다. 그가 이런 말을 하는 동안 어느 때보다도 더 잘생겨 보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잠시 뒤 엘리자베스가 말했다. “그분에게 무슨 까닭이 있었을까요? 무엇 때문에 그토록 잔인하게 행동했을까요?”
“저를 향한 철저하고 완강한 반감입니다. 어느 정도는 질투 탓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반감이지요. 돌아가신 다아시 씨가 저를 덜 좋아하셨다면 아들은 저를 더 잘 견뎠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아버지가 저에게 보인 각별한 애정이 아주 어린 시절부터 그를 자극했던 것 같습니다. 그는 우리가 놓인 경쟁 관계를, 제가 자주 받았던 그런 편애를 견딜 성품이 아니었습니다.”
“다아시 씨가 이렇게까지 나쁜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어요. 좋아한 적은 없지만 그토록 악하게 보지는 않았어요. 세상 사람들을 대체로 경멸하는 줄은 알았지만, 이런 악의적인 복수와 부당함, 비인간적인 짓까지 저지를 만큼 비열해질 줄은 몰랐어요!”
그러나 몇 분 동안 생각에 잠겼던 엘리자베스는 다시 말했다. “그러고 보니 네더필드에서 어느 날, 원한을 절대로 풀지 않으며 용서하지 않는 성격이라고 뽐내던 것이 기억나요. 정말 끔찍한 기질인가 봐요.”
“그 문제에 관해서는 제 자신을 믿지 않겠습니다.” 위컴이 대답했다. “제가 그분에게 공정하기는 몹시 어려우니까요.”
엘리자베스는 다시 깊은 생각에 잠겼다가 얼마 뒤 외쳤다. “자기 아버지가 대자로 삼고, 친구로 여기고, 총애했던 사람을 그런 식으로 대하다니!” 엘리자베스는 이렇게 덧붙일 수도 있었다. ‘게다가 당신처럼 얼굴만 보아도 상냥한 사람임을 보증할 수 있는 젊은이를!’ 하지만 다음 말로 만족했다. “아마 어린 시절부터 그분 자신의 친구이기도 했겠지요. 말씀하신 대로 두 집안이 아주 가깝게 얽혀 있었으니까요.”
“우리는 같은 교구, 같은 저택 영지 안에서 태어났고, 어린 시절 대부분을 함께 보냈습니다. 한집에서 지내며 같은 놀이를 즐기고, 같은 분의 부모다운 보살핌을 받았지요. 제 아버지는 처음에는 댁의 이모부인 필립스 씨가 훌륭하게 이름을 세우신 듯한 법조계에서 일했습니다. 하지만 돌아가신 다아시 씨에게 도움이 되려고 모든 것을 그만두고 펨벌리 영지를 돌보는 데 온 시간을 바쳤습니다. 다아시 씨는 아버지를 지극히 높이 평가했고, 가장 가깝고 믿는 친구로 여겼습니다. 아버지가 적극적으로 영지를 관리해 준 데 큰 신세를 졌다고 자주 인정하셨지요. 제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직전, 다아시 씨가 저를 보살피겠다고 자진해서 약속했을 때에는 저를 향한 애정만큼이나 아버지에게 진 빚을 갚는 일이라고 여기셨으리라 확신합니다.”
“너무나 이상하군요!” 엘리자베스가 외쳤다. “정말 혐오스러워요! 지금의 다아시 씨가 지닌 바로 그 오만함이라도 당신을 공정하게 대하도록 만들지 않았다니 놀라워요. 더 나은 까닭이 없었다 해도 부정직한 짓을 하기에는 너무 오만했어야 하지 않나요? 저는 그것을 부정직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어요.”
“정말 놀라운 일이지요.” 위컴이 대답했다. “그분의 거의 모든 행동은 오만에서 비롯되었고, 오만이 그의 가장 좋은 벗이 되어 준 때도 많으니까요. 다른 어떤 감정보다 오만이 그를 미덕에 가까이 붙들어 놓았지요. 하지만 누구도 언제나 한결같지는 않습니다. 그가 저를 대할 때에는 오만보다 더 강한 충동이 있었습니다.”
“그토록 지긋지긋한 오만이 그분에게 좋은 일을 한 적도 있나요?”
“그렇습니다. 그 오만은 자주 그를 도량 넓고 너그럽게 행동하도록 이끌었습니다. 돈을 아낌없이 내놓고 손님을 후하게 대하며, 소작인들을 돕고 가난한 이들을 구제하게 했지요. 가문에 대한 자부심과 아들로서의 긍지, 그는 자기 아버지가 어떤 분이었는지를 대단히 자랑스러워하니까요. 그것들이 이런 일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가문을 욕되게 한 사람으로 보이지 않으려는 마음, 사람들이 좋아하던 집안의 품성을 저버리거나 펨벌리 가문의 영향력을 잃지 않으려는 마음이 강한 까닭입니다. 오빠로서의 자부심도 있지요. 어느 정도의 남매간 애정과 합쳐진 그 마음 덕분에, 여동생에게 매우 친절하고 세심한 보호자가 됩니다. 사람들은 대체로 그를 가장 세심하고 훌륭한 오빠라고 칭찬할 겁니다.”
“다아시 양은 어떤 아가씨인가요?”
위컴은 고개를 저었다. “상냥하다고 말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다아시 집안사람을 나쁘게 말하면 괴롭지만, 그 아가씨는 오빠를 지나치게 많이 닮았습니다. 아주, 아주 오만하지요. 어린 시절에는 다정하고 사랑스러웠고 저를 몹시 따랐습니다. 저도 그 아이를 즐겁게 해 주느라 수없이 많은 시간을 바쳤지요. 하지만 지금은 제게 아무 의미도 없는 사람입니다. 열다섯이나 열여섯쯤 된 예쁜 아가씨이고, 듣기로는 온갖 교양과 재능을 갖추었다고 합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로는 런던을 집으로 삼고 있습니다. 한 부인이 함께 살면서 교육을 맡고 있지요.”
여러 차례 침묵이 흘렀고 다른 화제로 몇 번이나 옮겨 갔다. 그래도 엘리자베스는 다시 처음 이야기로 돌아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분이 빙리 씨와 가깝다는 사실이 놀라워요. 빙리 씨는 다정한 성품 그 자체처럼 보이고, 제가 정말로 믿기에 진심으로 상냥한 분인데, 어떻게 그런 사람과 친구가 될 수 있죠? 어떻게 서로 잘 맞을까요? 빙리 씨를 아세요?”
“전혀 모릅니다.”
“성격이 부드럽고 상냥하고 매력적인 분이에요. 다아시 씨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는 게 틀림없어요.”
“아마 그렇겠지요. 하지만 다아시 씨는 마음만 먹으면 사람을 기쁘게 할 줄 압니다. 능력이 부족한 사람은 아니니까요. 그럴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면 대화를 잘 나누는 벗이 될 수 있습니다. 지위가 자기와 대등한 사람들 사이에서는 형편이 못한 사람들을 대할 때와 전혀 다른 사람이지요. 오만함은 결코 버리지 않지만, 부유한 이들을 대할 때에는 도량이 넓고 공정하며 진실하고 합리적이고 명예롭고, 어쩌면 호감까지 갑니다. 물론 재산과 외모의 덕도 얼마간 감안해야겠지만요.”
얼마 지나지 않아 휘스트 놀이가 끝났다. 놀이하던 사람들이 다른 탁자 주위로 모여들었다. 콜린스 씨는 사촌 엘리자베스와 필립스 부인 사이에 자리를 잡았다. 필립스 부인은 으레 그렇듯 성적이 어땠느냐고 물었다. 그다지 좋지 않았다. 판마다 졌던 것이다. 하지만 필립스 부인이 그 일을 안타까워하기 시작하자, 그는 진지하고 엄숙하게 전혀 중요하지 않다고 단언했다. 그 돈은 사소한 액수일 뿐이니 마음 쓰지 말아 달라고 청했다.
“부인, 카드 탁자에 앉은 사람은 이런 일에서 운에 맡겨야 한다는 것을 저도 잘 압니다. 다행히 저에게는 오 실링이 문제가 될 만한 형편이 아닙니다. 물론 같은 말을 할 수 없는 사람도 많겠지요. 하지만 레이디 캐서린 드 버그 덕분에 저는 그런 사소한 일을 신경 써야 할 처지에서 훨씬 벗어나 있습니다.”
위컴 씨는 그 말에 주목했다. 잠시 콜린스 씨를 바라본 뒤 엘리자베스에게 낮은 목소리로, 친척들이 드 버그 집안과 아주 가깝게 지내느냐고 물었다.
“레이디 캐서린 드 버그가 아주 최근에 그분에게 성직록을 주었어요.” 엘리자베스가 대답했다. “콜린스 씨가 처음 어떻게 눈에 들었는지는 잘 모르지만, 두 사람이 안 지 오래되지 않은 것은 분명해요.”
“레이디 캐서린 드 버그와 레이디 앤 다아시가 자매였다는 것은 물론 알고 계시겠지요. 따라서 지금의 다아시 씨에게는 이모입니다.”
“아니요, 정말 몰랐어요. 레이디 캐서린의 친척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어요. 그저께까지는 그런 분이 있다는 말조차 들은 적이 없었어요.”
“그 따님인 드 버그 양은 막대한 재산을 물려받을 겁니다. 그 아가씨와 사촌이 결혼해서 두 영지를 합치리라고들 생각하지요.”
이 말을 들은 엘리자베스는 가여운 빙리 양을 떠올리며 미소 지었다. 다아시가 이미 다른 여자와 결혼하기로 스스로 정해 놓았다면, 빙리 양의 모든 관심도 그의 여동생을 향한 애정도 그 자신에게 쏟는 찬사도 참으로 헛되고 쓸모없는 일이었다.
“콜린스 씨는.” 엘리자베스가 말했다. “레이디 캐서린과 그 따님을 대단히 칭찬해요. 하지만 그가 부인에 관해 들려준 몇 가지 일을 보면, 감사하는 마음 때문에 판단이 흐려진 것 같아요. 후원자라고 해도 그분은 거만하고 자만심 강한 여자라는 생각이 들어요.”
“두 가지 모두 대단한 정도로 지녔다고 생각합니다.” 위컴이 대답했다. “여러 해 동안 만나지 못했지만, 예전에도 좋아한 적이 없다는 사실은 아주 잘 기억합니다. 명령조에다 건방진 태도를 지녔지요. 분별력과 재치가 아주 뛰어나다는 평판이 있지만, 그 능력의 일부는 신분과 재산에서, 일부는 권위적인 태도에서, 나머지는 조카의 오만에서 나왔다고 보는 편이 더 맞을 겁니다. 다아시 씨는 자기와 관계된 사람이라면 누구나 일류 지성을 갖추었다고 주장하고 싶어 하니까요.”
엘리자베스는 아주 그럴듯한 설명이라고 인정했다. 두 사람은 서로 만족스럽게 대화를 계속했다. 그러다 야식 시간이 되어 카드 놀이가 끝나고, 다른 숙녀들도 위컴 씨의 관심을 나누어 받을 수 있게 되자 이야기를 멈추었다. 필립스 부인이 차린 야식 자리의 소란 속에서는 대화가 불가능했다. 하지만 위컴의 태도는 모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무슨 말을 하든 훌륭하게 말했고, 무슨 행동을 하든 우아하게 했다. 엘리자베스는 머릿속을 온통 그로 채운 채 떠났다. 집으로 가는 내내 위컴 씨와 그가 들려준 이야기 말고는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하지만 가는 동안에는 그의 이름을 입에 올릴 시간조차 없었다. 리디아도 콜린스 씨도 한순간도 입을 다물지 않았기 때문이다. 리디아는 로터리 티켓 카드 놀이와 자기가 잃거나 따낸 물고기 모양 패에 관해 끊임없이 떠들었다. 콜린스 씨는 필립스 씨 부부의 친절을 이야기했다. 휘스트에서 잃은 돈은 조금도 마음에 두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야식에 나온 모든 요리를 하나하나 열거했다. 또 사촌 아가씨들을 너무 비좁게 만드는 것은 아닌지 거듭 걱정했다. 그에게는 마차가 롱본 저택 앞에 멈출 때까지 다 말해 내기 어려울 만큼 많은 이야기가 있었다.